안녕하세요, [취향기록]으로는 처음 여러분들을 맞이하게 된 이관우라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친구와 단둘이 카페를 가더라도 최소 3시간은 떠들 수 있는 호사가인데요. 원체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성격과 책, 영상 등의 미디어를 즐기는 습관 등이 합쳐져, 저는 어느새 그 누구보다도 다양한 토픽으로 대화를 사람들과 이어나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과 마음을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남기고픈 욕심이 생겨, 소소하게 이를 기록해보고자 [취향기록]을 시작해보게 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하나의 토픽을 들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토픽은 주마다 정말 기상천외하게 이야기될 거예요! 또 종종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쌓이게 된다면, 정기 연재일 외에도 뉴스레터를 보내드리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번 주 주제는 많은 고민 끝에 정했습니다. 르세라핌, 특히 르세라핌의 노래 ‘Blue Flame’이 이번 주의 주제입니다. 뭐 대강 생각나는 토픽에는 ‘밤’, ‘아메리카노’, ‘수영’, ‘이누야샤’, ‘에스파’, ‘파스타’ 같은 중구난방한 토픽들이 떠올랐는데요. 진짜 뜬금없고 다양한 토픽 중에서 하필 걸그룹, 그중에서도 아이돌 수록곡과 타이틀곡을 기념비적인 첫 토픽으로 선정한 건 제 [취향기록]이라는 뉴스레터가 다분히 문학적이지는 않았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 주제는 매주 제가 원하는대로 다양하고 제맘대로 진행될 터이니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
|
|
-LE SSERAFIM
뜨거운 감자, 르세라핌이다. 범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듀스48의 선발 그룹, 아이즈원의 미야와키 사쿠라와 김채원, 그리고 비록 탈락하긴 했지만, 프로그램 순위 상위권이었던 허윤진까지 인지도 있는 3명과 일본인 카즈하, 막내 홍은채까지 구성된 팀이다. (김가람과 관련해서는 일절 코멘트하지 않겠다.)
과거 청순하고 명랑한 이미지로 소비되던 김채원의 1년 만의 등장을 봤을 당시, 채원이의 완전히 이미지가 역전된 것도 그렇고, 실력이 서툴던 사쿠라의 비약적 성장 또한 그러하고, 많은 지점에서 르세라핌은 아이즈원의 연장선이 아닌 새로운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 여자 아이돌이 컴백하면 타이틀을 우선 들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앨범 전곡을 들어보곤 하는데, 르세라핌의 타이틀 ‘Fearless’는 그러한 부분에서 완벽히 좋았다. 한국 여자 K-pop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쨍한 고음의 후렴구가 메인인데, 이러한 케이팝의 기본 공식을 탈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케이팝의 기본적인 음에 비해 확실히 곡 전반의 키가 낮다. 이런 곡들은 장단점이 있는데, 장점으로는 노래를 부를 때 목을 아낄 수 있다는 거고, 단점으로는 신나는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하거나, 라이브를 할 때 호흡이 딸리는 등의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이런 점들은 확실히 극복했다고 생각이 든다. ‘Fearless’는 곡의 중독성도 확보했고, 퍼포먼스적인 시각적 요소들도 만족시켰다. 여돌 3세대로 불리는 트와이스, 블랙핑크, 레드벨벳, 아이즈원, 여자친구 등의 음악과는 확연히 다른 4세대의 곡이라는 정체성이 확보된 지점이다.
여돌 4세대로 불리는 대표 그룹에는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 스테이씨, 엔믹스 등이 있을 거다. 이 중 높은 고음을 선보이는 그룹은 스테이씨, 엔믹스가 있을 거고, 곡의 급작스러운 변주와 특이한 멜로디 라인, 낮은 음이지만 음색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후렴구를 선보이는 그룹은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이 있을 거다. 과거 대중성을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전개하던 2, 3세대 여자 아이돌들의 흐름과는 다르게 요즘 4세대 여자 아이돌은 세계관과 매니아층 확보 등을 들어 음반 판매에 주력을 두어 더 큰 자본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전략의 변화가 3세대와 4세대를 구분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르세라핌은 확신의 4세대 아이돌 유형이다. 처음 봤을 때 다소 매니악하다고 느껴지는 콘텐츠들과 컨셉이지만, 막상 빠져들게 되면 그 누구보다 진심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 대중성을 기반으로 TV 컨텐츠로 소비되던 아이돌들이, 이제는 유튜브, OTT 등을 기점으로 조금 더 개인적이고 긴밀하게 소비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인터넷의 개인화가 제법 보편화된 201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EXO의 세계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엑소의 팬덤에 국한되었지만, 이제는 에스파의 독자적 세계관인 SMCU를 꽤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소비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르세라핌은 대중들에게 획일화되지 않은 컨셉, 독자적인 세계관 (웹툰과 웹소설을 통해 공개될 예정.), 후크송의 개념을 차용하는 동시에 고착화된 여성상을 탈피하는 z세대의 아이덴티티까지 담은 그룹이 아닐까 생각된다. 기존부터 이어져 온 팬덤을 등에 업고 새로운 세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가는 르세라핌은 가히 아이코닉한 위치에 오를 법하다. |
|
|
-BLUE FLAME
르세라핌의 ‘Fearless’가 아닌 ‘Blue Flame’를 베스트 곡으로 택한 이유는 확신의 탈피에 있다. 가수들의 타이틀곡은 주로 가장 좋은 노래이기도 하지만, 아이돌의 경우는 컨셉과 세계관을 무시할 수 없다. 단적인 예시로 에스파는 데뷔 이래로, 모든 타이틀이(이벤트성 싱글 제외) SMCU(SM Culture Universe)하에 움직인다. 가사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세계관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체계성에 사람들은 그 아이돌을 단순히 가수로서만 인식하는 게 아닌 세계로서 인식하는 마케팅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음악적으로나 가창으로서 가장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곡은 주로 수록곡에 있게 되고, 그러한 의미에서 음악적 퍼포먼스에서는 수록곡의 퀄리티가 더 높은 상황들이 종종 발생한다.
‘Blue Flame’은 묵직한 베이스 사운드가 깔리는 디스코-펑크 사운드의 곡이다. 이 곡은 지극히 케이팝스러우나, 동시에 베이스로 잡아주는 곡만의 분위기가 곡의 퀄리티를 높여주고 차별성을 부여한다. 특히 나는 원체 디스코 사운드를 좋아하다 보니, 이 곡이 좋은 건 당연할 터이다. 타이틀곡 ‘Fearless’의 경우 당돌하고 용감한 여성상을 담고 있다면, ‘Blue Flame’의 경우는 호기심에 모험을 탐닉하는 캐릭터를 내세운다. 과거 순종적인 순정, 청순 등의 여성상이 성행하던 시대를 지나 최근 십여 년은 강한 여성, 주체적 여성, 액션, 자신감 등의 키워드를 내세우는 엔터테이너들이 미디어에 쏟아지듯 등장했다. 이는 어찌 보면 수백, 수천 년간 지속된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탈피로서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컨텐츠 소비자들에게는 이 십여 년의 양상 또한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몇 년 전과는 달리 더는 ‘걸크러시’ 자체에 열광하지는 않는다. 그런 부분에서 ‘Blue Flame’의 캐릭터는 확실히 익숙하나 새롭다.
르세라핌의 보컬에서 집중할 사람은 셋, 허윤진, 김채원, 카즈하라고 생각한다. 허윤진, 김채원의 보컬은 전적으로 우리가 과거 트와이스에서 느꼈던 실력에 대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트와이스의 지효와 나연이 주는 힘 있고 시원한 보컬과 음색이 좋고 여리지만 쨍한 보컬의 조화를 허윤진, 김채원은 유사하게 보여주며, 청자에게 하여금 가창력에 관한 신뢰를 준다. 나는 르세라핌의 정말 뚜렷한 개성은 카즈하라고 생각되는데, 카즈하는 기존 여자 아이돌 그룹에서 제시해온 뉴트럴한 멤버와는 구별된다. 뉴트럴한 비주얼로 승부를 보는 게 아닌 매력적인 저음으로 곡의 맛을 잡아준다. 비슷한 느낌으로 스테이씨의 재이가 있는 듯하나, 아직까진 여자 아이돌에서는 유니크한 포지션을 가져가는 듯하다.
Blue Flame, 개인적인 선정으로는 올해 상반기에 나온 걸그룹 노래 중에 베스트다. (반박 시 여러분 말이 다 맞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르세라핌이 5인조가 되었으면 한다. 만일 6인으로 다음 컴백을 하게 된다면,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응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한다. 이 곡과 그룹이 더 사랑받길 바란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