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떡볶이를 좋아했다. 지금은 없어진 우리 아빠의 가게 앞 슈퍼의 연화 아줌마네 떡볶이는 내 유년기를 담당했다. 엄마가 해준 집 떡볶이는 묘하게 내 취향이 아니었고, 엽기떡볶이는 엄마 입맛에 맞춰 항상 너무나 매웠고, 연화 아줌마의 가게는 어느새 사라졌다. 엄마는 유독 즉석 떡볶이를 좋아했다. 나는 진득하게 끓여낸 판 떡볶이를 더 좋아하는데. 종종 월미도에 드라이브가면 늘 신당동 떡볶이집에 가 떡볶이를 먹었다. 회 같은 걸 먹지 못하는 엄마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바닷가 식당이었으리라. 엄마는 떡볶이 국물을 오뎅 국물에 넣어 먹었다. 오뎅 국물은 매콤해졌다. 매운 오뎅을 팔기 시작한 건 그러고 몇 년 후였다.
엄마의 떡볶이는 나에게로 왔다. 엄마는 종종 내게 나와 당신의 입맛이 닮았다고 했다. 당연했다, 나는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자랐으니. 하지만 엄마의 떡볶이는 완전히 입에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엄마와 내가 공통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가 말이다.
나는 누나와 같이 살고, 다시 혼자 살게 되면서, 떡볶이를 너무나도 많이 해 먹었다. 성인이 되고 완전히 빠져든 떡볶이의 세계는 하루에도 2, 3번씩 먹었다. 그저 맛있었다. 제법 웃겼다, 어린 애도 아니고 떡볶이를 매끼 먹는다니. 하루 두 끼를 먹는 나지만, 점심에 한 번, 술자리 1차에서 한 번, 3차에서 한 번 먹으면 세 번도 금방이었다. 요리도 곧잘 하는 나여서 그날마다 먹고 싶은 맛으로 할 수 있었다. 평범하게는 기본이고, 크림, 짜장, 카레, 마늘, 국물 떡볶이를 만들고, 얼큰하게, 시원하게, 달게, 감칠맛 나게, 꾸덕하게 등등 원하는 대로 옵션을 고를 수 있었다. 떡볶이는 처음 서울에 와서 친구가 많던 누나와는 달리 혼자 외로이 지냈던 내가, 유일하게 내가 선택할 수 있던 옵션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자유로웠던 것이었다. 그래서 떡볶이가 유독 좋았나 보다. 엄마와는 맛이 달랐다. 나는 내 떡볶이가 가장 맛있었다. 엄마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누나는 나를 그리워할 때 종종 떡볶이를 그리워했다. 내가 해주는 마늘 맛이 한껏 나는 그 떡볶이를 좋아했다. 정작 누나와 같이 살 때는 누나가 그 떡볶이를 그렇게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나와 누나는 서로를 그리워했다. 누나는 나를 그리워할 때 내가 해준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떡볶이를 맛있게 하는 방법이 뭐냐고 하면, 오래 끓이는 거라고 할 거다. 판 떡볶이가 맛있는 건 떡이 양념에 오래오래 익혀지면서 맛을 흡수해서다. 떡볶이가 처음에는 떡이 국물에 둥둥 뜨면서 허여멀건하게 익다가, 어느 순간 팔팔 끓으면 터져서 널부러지다가, 어느샌가 우리가 아는 그 판 떡볶이의 쫀쫀한 모습이 되어 있다. 씹으면 쩔벅거리는 소리가 나는 꾸덕한 떡과 양념이 되어 있다. 그래서 내 떡볶이는 만드는데 수십 여분이 걸린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무조건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건 깰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시간이다.
간혹 이 시간동안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슬슬 떡볶이를 저어주다가, 엄마 생각을 했다. 떡볶이조차 이해하는 내가 왜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배려심이 넘치는 나의 모습은 엄마에겐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떡볶이를 맛있게 먹어놓고, 정작 이런 말이나 남기는 나의 소시민적인 모습이 가끔은 부끄러웠다. 엄마에게 이렇게 자신 있어 하는 떡볶이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은 떡볶이를 잘 만들게 되고도 한참 후였다. 한참 후에서야 생각이 났다.
본가에서 엄마를 위해 만든 떡볶이는 무척 아쉬웠다. 재료들도 자취방과는 차이가 있고, 기구들도 그래서, 맛도 좀 달랐다. 나는 맛은 있었지만 약간 실망적이었는데, 엄마는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내가 만든 마카롱을 좋아했다. 당근 케이크도 좋아했다. 근데 떡볶이도 좋아했다.
엄마의 떡볶이는 나에게로 왔다. 엄마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