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편. [체커보드], [오른손 이야기] 안녕하세요. [0123] 네 번째 보내드리는 이관우입니다. 겨울이 끝나갑니다. 최근 건강이 악화되어, 부모님께서 제 걱정이 많으십니다. 제가 건강하게 살아야하는데 말이죠. 여러분들도 건강 조심하세요!
최근 유튜브를 보다가, <닥터 지바고>의 명대사를 보고 마음이 동했답니다. 한 구절 남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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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나의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그대,
잘 가, 나의 자랑,
잘 가, 나의 빠르고 깊은 시냇물이여.
하루 종일 출렁이는 당신의 물소리를 정말 사랑했고, 당신의 차가운 물살 속에 몸을 던지는 것을 정말 사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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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구절 아닌가요? 저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답니다 하하. 저도 멋진 소설을 한 편 쓰게 된다면 좋을 텐데요.
이번 주는 시 두 편을 준비했습니다. [체커보드]는 흑백의 체스판을 보고 썼습니다. 이분법의 상징과 같은 흑과 백이 교차로 나열되어 있는 체스판은 참 극단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온오프의 세상에 살고 있나요?
[오른손 이야기]라는 시는 인체에 대해 생각을 해보며 썼습니다. 신체를 떠올리면서 읽으시면 잘 읽히실 거 같습니다.
이번에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번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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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커보드는 흑백의 나열
흑색을 두르고 검은 판에 올라가
자연스레 나를 넘기어 갈 때가 있어
흑과 백의 세상에서
나는 온전히 숨어 버리든가
온전히 드러나 버리지
백색 조각 위에서의 나는
어떤 옷을 걸쳐도
전라, 헐벗은 나체의 안무를 내보이지
내 벗은 몸을 이제야 다 보았다면
나는 다시 사라질게
나를 넘기어 가는 칠흑 속으로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있니
나는 흑과 백, 그 무엇도 아니야
무無 내지는 전부 따위가 아닌 그 어딘가의 어떤 색
흑판에서의 위장은 단 한 번도 갖춰진 숨음이었던 적 없고
백판에서의 무대는 제법 화려했음에도 완벽한 적 없이
그저 발화하던 초상
도망치지 않고, 춤추지 않고
그저 표류하는
나이트도 아니고, 퀸도 아니고,
난 체스 말이 아닌데 말이야
칸들을 옮겨 가며 내 자리를 찾고 있어
살색 핀의 자리는 어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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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로 시작해서 둘로 끝나지
바닥에 닿지 못하는 두 갈래도 있어
수많은 가닥이 이어진 끝에야 시작되는 우리
가닥의 끝이 시작이래
시작은 어떤 종말의 이야기
넌 오른손으로 독특한 소리를 냈지
손은 소리를 내는 곳이 아니잖아
난 사실 너의 어떤 소리보다도 그 소리를 좋아했지
너의 진짜 소리가 그것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너의 어떤 소리보다도 좋아하는 소리
너와의 시작 이후
나아가는 수많은 갈래 중 우리가 마주한 그 갈래
바닥에 닿는 게 쉽진 않을 줄 알았는데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우리의 종말은 결국 닿지 않는 이야기
넌 오른손으로 독특한 소리를 냈지
사실 네 모든 소리를 사랑했는데
나는 유독 그 소리만 그리워하게 되었어
나는 너보다 그 소리를 그리워하게 되었어
내가 너의 어떤 소리보다도 좋아하는 소리
시작은 어떤 종말의 이야기
시작은 어떤 닿지 않는 이야기
독특한 그 소리는 어떤 그리움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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